지난 분기에 공부한 외국어 두 개 중, 지금 시험장에 바로 들어가도 되는 쪽이 하나라도 있나요? 저는 없었습니다. 중국어 교재와 영어 말하기 스크립트를 같은 가방에 넣고 다니던 몇 달 동안 하루 평균 공부 시간은 오히려 늘었는데, 두 시험 모두 목표 등급 바로 아래에서 멈췄습니다. 노션 스터디플래너를 열어보니 더 민망했어요. 중국어 단어장을 마지막으로 연 날과 그다음 연 날 사이가 엿새나 벌어져 있었고, 그 엿새 동안 영어 답변 녹음은 매일 돌아갔더군요.
어학 시험 두 개 동시 준비가 깨지는 건 시간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
흔히 “시간을 반으로 쪼개니 당연히 둘 다 못한다”고 정리하지만, 제 기록을 놓고 보면 총량은 거의 줄지 않았습니다. 무너진 건 간격이었습니다. 외국어는 한 번에 많이 넣는 것보다 짧게라도 자주 다시 꺼내는 쪽이 유지에 유리한데, 과목이 둘이 되는 순간 한쪽은 자동으로 “오늘은 저쪽 차례”라는 이유로 밀립니다. 그리고 밀린 날이 사흘을 넘기면 다시 펼쳤을 때 복습부터 해야 해서, 그날 분량의 절반이 어제 한 걸 되찾는 데 쓰입니다.
여기에 하나 더 겹칩니다. 말하기 시험과 듣기·독해 시험은 쓰는 근육이 다릅니다. 입을 쓰는 연습은 하루 걸러 하면 발화 속도가 눈에 띄게 뻑뻑해지는데, 어휘 암기는 며칠 비어도 회복이 비교적 빠릅니다. 그래서 두 개를 번갈아 돌리면 회복이 느린 쪽이 먼저 망가지고, 그게 보통 말하기입니다. 제 경우엔 반대로 영어 말하기를 매일 붙잡고 중국어를 띄엄띄엄 가져간 탓에, 망가진 쪽이 중국어 듣기 점수로 나왔습니다. 결국 어느 쪽을 버리든 비용이 생긴다는 뜻이고, 그렇다면 비용이 작은 순서를 미리 고르는 게 낫습니다.
시험 일정 구조가 순서의 절반을 이미 정해줍니다
무엇을 먼저 끊을지 감으로 정하기 전에, 두 시험의 응시 구조부터 비교하는 게 빠릅니다. 기회가 희소한 시험이 먼저고,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시험이 나중입니다.
성격이 정반대인 두 시험을 나란히 놓아보겠습니다. JLPT는 국제교류기금 안내 기준으로 한국에서 7월과 12월, 연 2회만 시행됩니다. 한 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까지 약 반년이 비고, 합격 여부 확인까지도 시간이 더 걸립니다. 반대로 OPIc은 상시 시행이지만 시험관리규정에 25일 응시제한이 걸려 있어서, 같은 언어는 최근 응시일로부터 25일이 지나야 다시 볼 수 있습니다. 성적은 응시일로부터 5일 후 오후 1시 이후에 확인할 수 있고요. 재도전 주기가 한쪽은 반년, 한쪽은 한 달인 셈입니다.
이 차이가 순서를 거의 결정합니다. 연 2회짜리를 뒤로 미루면 실패 비용이 반년인데, 월 1회꼴로 다시 볼 수 있는 시험을 미루면 최악의 경우 한 달 손해입니다. 제가 처음에 순서를 잘못 잡은 이유도 여기 있었어요. 제 조합은 중국어와 영어였는데, 급한 건 회사 제출 기한이 가까운 영어 쪽이라고 생각했거든요. 그런데 영어는 한 달 뒤에 다시 볼 수 있었고, 중국어 지필 회차는 그 사이에 한 번뿐이었습니다. 급한 것과 되돌릴 수 없는 것을 헷갈린 셈입니다.

먼저 끊을 시험을 고르는 네 가지 판단 기준
일정 구조만으로 안 갈릴 때 제가 쓰는 기준은 네 개입니다. 위에서부터 보고, 갈리는 순간 멈추면 됩니다.
- 되돌릴 수 있는 간격 — 다음 기회까지 며칠인지. 반년짜리와 한 달짜리가 붙어 있으면 고민할 것 없이 반년짜리가 먼저입니다.
- 성적이 필요한 시점과 유효기간 — 지원서 마감이 10월인데 성적 발표가 9월 말이면 여유가 없습니다. 반대로 지금 따두면 2년 내내 쓸 수 있는 성적이라도, 쓸 일이 1년 뒤라면 굳이 올해 1순위일 이유가 없고요. 가진 성적들의 만료일을 한 번에 모아보는 방법은 시험 성적 유효기간 관리법, 갱신 기준 4단계에 정리해뒀습니다.
- 남은 거리 — 목표까지 한 등급이 남았는지 세 등급이 남았는지. 가까운 쪽을 먼저 끝내야 “하나는 끝냈다”는 상태가 빨리 생기고, 그 상태가 다음 시험의 체력을 만들어줍니다.
- 회복 속도 — 말하기·작문처럼 손을 떼면 금방 굳는 영역이 걸린 시험을 먼저 치우는 편이 낫습니다. 어휘·독해 위주 시험은 유지 모드로 버티기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.
네 기준이 서로 다른 답을 가리킬 때가 있습니다. 그럴 땐 첫 번째가 이깁니다. 기회 자체가 사라지는 손실은 다른 것으로 메울 수 없으니까요.
하나씩 끊어간다는 건 다른 하나를 버린다는 뜻이 아닙니다
순서를 정하고 나서 제가 저지른 두 번째 실수가 이겁니다. 중국어를 1순위로 올리면서 영어는 아예 손을 놨어요. 두 달 뒤 다시 영어 녹음을 켰더니 문장이 중간에 자꾸 끊기더군요. 완전히 끊으면 나중에 재진입 비용이 그만큼 붙습니다.
그래서 지금은 2순위 과목을 유지 모드로 돌립니다. 하루 15~20분, 새 진도는 나가지 않고 이미 아는 것만 돌리는 방식입니다. 영어 말하기라면 기존 답변 두 개를 소리 내서 다시 말하기, 중국어라면 이미 외운 단어장 한 묶음 훑기. 새 내용을 넣지 않는 게 핵심인데, 새 진도는 복습 부담을 계속 늘려서 유지 모드가 아니라 작은 주력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. 주말 하루만 90분 정도 몰아서 감각을 확인하는 식으로 바꿔도 괜찮습니다.

전환 시점도 미리 정해두는 게 좋습니다. 1순위 시험을 치른 날이 아니라 성적을 확인한 날이 기준입니다. 떨어졌을 때 재응시 일정까지 포함해야 다음 계획이 어긋나지 않거든요. OPIc처럼 5일 뒤 발표되는 시험이라면 시험 다음 주부터 바로 2순위로 넘어가면 되고, 결과 확인까지 몇 주가 걸리는 시험이라면 그 공백을 통째로 2순위 집중 기간으로 쓰면 됩니다. 어차피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엔 1순위 공부를 더 해봐야 점수가 바뀌지 않으니까요.
그래도 둘을 같이 가져가야 한다면
동시 준비가 항상 틀린 선택은 아닙니다. 제 기준으로 병행이 성립하는 조건은 셋 정도입니다.
첫째, 두 시험의 마감이 모두 외부에서 정해져 있고 겹칠 때. 회사 제출 기한과 지원 마감이 한 달 차이로 붙어 있으면 순서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둘 다 치러야 하는 문제입니다. 이때는 목표 등급을 하나 낮춰 잡는 게 현실적입니다. 둘 다 최고 등급을 노리면 둘 다 놓칠 확률이 올라가요.
둘째, 한쪽이 이미 유지 모드로 내려와 있을 때. 작년에 한 번 받아둔 등급을 갱신만 하면 되는 상황이라면 사실상 과목이 하나입니다.
셋째, 두 시험이 같은 언어의 다른 영역일 때. 같은 영어라도 읽기 중심 시험과 말하기 시험은 어휘가 상당 부분 겹쳐서, 읽으며 모은 표현을 그대로 답변에 쓰면 두 번 공부하는 느낌이 덜합니다. 다만 언어가 서로 다르면 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. 중국어와 일본어처럼 한자를 공유하는 조합은 독해에서 이득을 보는 대신 발음에서 서로를 끌어당기는 경우가 있어, 저는 그 둘을 같은 시기에 두지 않는 쪽을 택했습니다.
병행하기로 했다면 요일로 나누지 말고 시간대로 나누는 편이 안정적이었습니다. 월·수·금은 중국어, 화·목은 영어 식으로 짜면 야근 한 번에 한 과목이 통째로 날아가는데, 매일 아침 20분은 A, 퇴근 후 50분은 B로 두면 하루가 깨져도 절반만 손실됩니다. 퇴근 후 실제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적다는 건 퇴근 후 자격증 공부, 시간 확보 오해 7가지에서 따로 계산해본 적이 있습니다.
오늘은 딱 하나만 해보셔도 됩니다. 준비 중인 두 시험의 다음 응시 가능일과 그다음 응시 가능일을 각각 찾아서 달력에 적어보세요. 간격이 더 긴 쪽이 이번 분기의 1순위입니다.
함께 보면 좋은 글
LUCE HOUSE에서 더 알아보기
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.




